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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펩시콜라 최고로 키운 세일즈맨의 죽음
코카콜라와 동급으로 육성 도널드 켄달 前 CEO 타계
입력 : 2020-09-23 17: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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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콜라의 전체 임직원은 도널드 M. 켄달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더할 수 없는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펩시콜라 패밀리의 설계자였던 도널드는 사업을 키우는 데 결코 물러섬이 없었고, 두려움을 모르는 리더였으며, 최고의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그는 지금의 펩시콜라를 만든 주인공이었습니다.”

지난 19일 향년 99세로 타계한 도널드 M. 켄달 펩시콜라 前 CEO를 기리면서 라몬 L. 라구아르타 現 회장이 밝힌 추도사의 첫 구절이다.

라구아르타 회장은 “도널드가 삶에 대해, 그리고 달라진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보여준 부단한 열정에서부터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에 이르기까지, 기업활동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간 간극을 메울 수 있다는 신념에서부터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역량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펩시콜라의 전체 임직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준 리더였다”고 회고했다.

뒤이어 도널드를 알고 서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고 라구아르타 회장은 단언했다.

시장에서 경쟁하고 승리해야 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준 인물이 도널드 켄달 前 회장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추도사에 따르면 펩시콜라가 뉴욕 교외지역에 매입한 본사건물 주위에는 ‘P’자 모양의 연못이 하나 있다. 이 연못 끝 쪽에는 가문비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는데, 외래종인 이 나무는 빠른 성장과 오랜 수령(樹齡), 특유의 강인함으로 가치높게 평가받는 수종에 속한다.

이 나무는 40여년 전에 도널드 켄달 前 회장이 직접 심은 것이다. 도널드 켄달 前 회장은 이 나무처럼 오랜 기간 재직하면서 뿌리를 내렸고, 크게 성장했고, 강인한 존재로 우뚝 선 펩시콜라의 버팀목이었다.

도널드 매킨토시 켄달은 23년여 동안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했고, 지난 1986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고문(trusted advisor)이자 조력자(advocate)로 남아 총 39년여 동안 몸담았다.

특히 켄달 前 회장은 지난 1965년 스낵류 기업 프리토레이(Frito-Lay)를 계열사로 인수하면서 사실상 오늘날의 펩시콜라를 만든 재창업자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 중 하나이자 세계 최고의 식‧음료 브랜드 가운데 한곳으로 펩시콜라를 육성한 인물이 바로 켄달 前 회장이다. 그의 CEO 재임기간 동안 매출이 2억 달러에서 76억 달러로 무려 40배 가까이 껑충 뛰어올랐을 정도.

켄달은 1921년 3월 16일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북서쪽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소도시 세큄(Sequim)의 한 낙농업 농가에서 출생했다. 일찍부터 소젖을 짜고 토지를 개간하면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스타였던 켄달은 장학금을 받고 웨스턴 켄터키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사회생활은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볼링그린에서 영업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구두 세일즈맨으로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1941년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입대한 켄달은 2차 대전에 참전해 3회에 걸쳐 우수 조종사 메달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해군에서 배운 가장 큰 기술은 인간관계(human relations)였다고 서슴없이 말했고, 평생 동안 그의 가장 큰 자산이 됐다.

1947년 10월 펩시콜라에 영업직으로 지원서를 제출해 합격한 켄달은 하지만 입사 초기에는 음료 주입(bottling) 라인 배치를 거쳐 콜라 배달용 트럭을 몰았다.

이후 요식업계에서 사용하는 시럽제 판매직에 발령받은 것을 시작으로 뛰어난 실적을 올리면서 승진을 거듭해 35세 때 영업‧마케팅 담당이사로 발탁됐다.

1957년 펩시콜라 인터내셔널(Pepsi-cola International) 사장에 올랐던 켄달이 다른 자리로 옮겼을 때 펩시콜라는 전 세계 103개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있었다.

마침내 1963년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직에 오른 켄달 회장은 2년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료를 마실 때 스낵을 함께 먹는다는 팩트를 바탕으로 프리토레이를 인수했다. 당시부터 켄달 회장이 주창한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아”(Better Together)는 지금도 펩시콜라의 글로벌 사업모델에서 핵심적인 캐치프레이즈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게 켄달 회장이 20여년에 걸쳐 최고경영자로 재임하는 동안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와 동급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역대 미국 대통령 뿐 아니라 외국의 정상급 지도자들과도 교류한 켄달 회장은 오랜 기간 리차드 닉슨 대통령과 호형호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닉슨이 부통령으로 재직 중이었던 지난 1959년 舊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미 박람회(American National Exhibition)에서 켄달 회장의 부탁을 받은 닉슨은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을 펩시콜라의 전시부스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흐루쇼프는 자신의 인생 첫 콜라를 시음할 수 있었고, 14년 후 펩시콜라는 소련에서 판매된 최초의 미국 소비재 상품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다. 코카콜라를 앞섰던 것이다.

그 후로도 켄달 회장은 전 세계를 순방하면서 기업인 정치가(corporate statesman)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사실상 미국의 비즈니스 홍보대사 역할을 자임했다.

국가간 교역이야말로 고용을 창출하고, 생활수준 향상을 가능케 하면서 의사소통의 부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이유로 평소 자유무역의 신봉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경쟁심, 모험 감수하기, 뛰어난 실적,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 등 4가지 덕목에서 역량을 널리 인정받은 켄달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마운틴 듀’를 인수했는가 하면 ‘다이어트 펩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직 20세기 중반이었던 무렵 당시의 문화적 규범에 반기를 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준을 끌어올린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지난 1962년 주요 미국기업 가운데 최초로 하비 러셀을 흑인 부회장직에 발탁했을 때 적극적인 지지로 과감한 인사발령 조치를 서포트했고, 이에 KKK단이 펩시콜라를 보이코트하자고 선동하고 나서자 두 번째로 흑인을 이사직에 앉혔다.

1962년이면 흑인을 백인석에 앉지 못하게 하는 차별에 반발해 ‘버스 안타기 운동’을 촉발시킨 ‘로자 파크스 사건’(1956년)이 발생한 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일찍부터 환경보호에 눈을 떠 아직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던 1970년대 초에 전미 자원재생센터(NCRR)를 총괄하면서 포장재 재활용, 온실가스 배출 감축, 수자원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매진했다.

예술 애호가여서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의 회장을 맡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영화 ‘백야’의 주인공)를 영입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켄달 회장의 각별한 예술과 환경에 대한 사랑은 지금의 펩시콜라 본사 캠퍼스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1970년대에 뉴욕 맨하탄 마천루에 들어서 있었던 본사를 교외의 전원지대로 이전한 주인공도 켄달 회장이다.

그가 직접 선정한 45점의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펩시콜라의 본사 캠퍼스는 오늘날 연간 1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P’자 모양의 연못에서 가문비나무를 바라보면서 펩시콜라를 마시고 프리토레이 스낵을 즐긴다.

켄달 前 회장의 정신(spirit)을 되새기면서..
기능식품신문 이덕규 기자(abcd@yak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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