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폐암은 물론, 심장병과 만성 기관지염에 이르기까지 예방이 가능했으면서도 으뜸가는 사망원인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마른 체형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끽연파들이 금연을 망설이는 사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을 정도.

이와 관련, 담배의 핵심물질인 니코틴이 흡연자들의 식욕을 억제하는 뇌내 기전을 규명한 연구결과가 나와 차후 니코틴 금단증상 뿐 아니라 체중감소를 촉진하는 신약의 개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미국 예일대학 의대의 마리나 피치오토 박사 연구팀(행동신경학)은 ‘사이언스’誌 10일자 최신호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그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니코틴이 POMC 뉴런들을 활성화시켜 식욕 감퇴를 유도하는 데 미친 영향’.

그러고 보면 니코틴이 각종 욕구의 감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 메릴랜드州 베데스다에 소재한 군의관양성의과대학(USUHS)의 행동신경학자 닐 그룬버그 박사팀에 의해 지난 1982년 처음으로 베일이 벗겨진 바 있다.

이와 관련, 뇌 내부에서 니코틴 수용체들은 15개의 기본단위(subunits)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메커니즘을 달리하는 다양한 수용체들을 생성시키게 된다.

니코틴이 결합형태에 따라 담배 의존성을 유도하거나, 혈압을 높이거나, 긴장감이 완화되는 느낌을 갖도록 이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

특히 니코틴 수용체들은 보상‧행동강화 시스템에 관여해 식욕 감퇴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따라왔다.

피치오토 박사팀은 실험용 쥐들을 대상으로 뇌내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니코틴 아세틸콜린 수용체의 일종인 ‘α3β4’를 활성화시켰을 때 우울증이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처럼 ‘α3β4’ 수용체의 활성을 유도한 실험용 쥐들에게서 프로오피오멜라노코르틴(POMC) 뉴런들의 활성이 강화되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 POMC 뉴런들과 이로 인해 활성이 유도된 멜라노코르틴 4 수용체들이 실험용 쥐들에게서 니코틴의 작용에 의해 사료 섭취욕구가 억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이 눈에 띄었다.

다시 말해 니코틴이 시상하부의 멜라노코르틴 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음식물 섭취욕구를 억제하고 체중을 감소시키는 데 관여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는 것.

피치토 박사는 “이번 시험을 진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α3β4’ 수용체가 음식 섭취와 관련해 뇌 내부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피치토 박사팀은 계속 진행한 연구를 통해 니코틴이 ‘α3β4’ 수용체와 결합되었을 때 포만감을 유도하는 신호가 뇌내 전체로 전달되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과식을 한 후 뇌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신호전달과 구분이 되지 않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피치토 박사는 “실험용 쥐들에게 ‘α3β4’ 수용체와 결합을 촉진하는 약물을 투여한 후 2시간이 경과했을 때 음식 섭취량이 대조群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30일 후 체지방이 15~20%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에서 확인된 새로운 작용경로가 금연 초기에 흡연욕구를 억제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타깃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피치토 박사는 결론지었다. 그 뿐 아니라 흡연과 관련된 유해한 영향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체중을 감량하는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도 접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룬버그 박사는 “욕구 감퇴가 도파민 보상경로를 통해 유도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번 연구결과는 니코틴이 작용하는 또 다른 경로가 존재함을 입증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